문학집배원 ‘성석제의 문장배달’을 시작하며

제가 나서 자란 고향 집 위쪽에는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아득히 높고 긴 둑 왼쪽에 수문이 있었고 수문 위 산 아래에는 수문지기의 집이 있었지요.
그 집은 양철로 지붕을 하고 붉은 칠을 한 양옥집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보기 드문 신식 집이어서 그 앞을 지나다닐 때면 누가 그곳에 사는지 궁금했고 그 안에 있는 고요한 마루에 앉아보고 싶었습니다.
‘문학 집배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 수문지기를 떠올렸습니다.
이미 우리 문학이라는 거대한 저수지는 상봉과 상상봉의 샘에서 발원하여 상류를 거쳐
흘러내려와 둑이 넘실거리도록 많은 시와 문장이 들어 있지요. 집배의 ‘집’에는 모은다는 뜻도 있지만 모인다는 뜻도 있습니다.
‘배’는 물론 나눈다는 뜻이지만 술의 빛깔이라느니 짝을 지어준다는 뜻도 있군요.

저는 이미 모여 있는 잘 익은 술과 같은 아름다운 빛깔의 문장이 많은 사람의 가슴과 머리로 흘러갈 수 있도록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을 잠시 맡겠습니다.
문장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힘찬, 인생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장이 냇물과 수로, 도랑을 따라 흘러갈 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냇가를 따라 달리셔도 좋고 도랑에 발을 담그셔도 좋습니다.
문장으로 푸르러진 마음의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든가요.
저는 저수지의 물로 세수를 하고 둑 위에 서서 얼굴에 묻은 물을 바람에 말리던 때를 떠올립니다. 수문 반대편에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 바람이 집을 짓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그 자연스러움에 흔연히 함께 해주시기를.

문학집배원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