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집배원 ‘성석제의 문장배달’을 마치며

그럼, 안녕히

지금 제 책상에는 마지막 한 장 남은 제 명함이 놓여 있습니다.
명함에는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라는 소속기관과 함께 ‘소설가·문학집배원’이라는 직함을 단 제 이름이 연락처와 함께 인쇄돼 있는데요. 이 명함과 함께 마지막까지 지갑에 들어 있던 명함 한 장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 모네다궁 지하문화센터에 있는, 칠레 불후의 가수인 비올레따 빠라의 전시관에서 만난 묘령의 여성 기획자 책상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처음 이 명함을 받았을 때는 소설가에게, 아니 저라는 사람에게 명함이라는 게 도통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남에게 내밀기가 무척 쑥스럽더군요. 시간이 가며 문학집배원이라는 게 뭔지, 문학나눔이라는 게 어떤 말인지 설명해주는 데 익숙해질 만하니까 이 신나는 완장을 벗게 된 것 같습니다.

제게 ‘문장배달’을 맡긴 이유는 재미있게 해보라는 뜻이었을 텐데, 다른 일에서도 늘 그렇듯이 저는 재미있었지만 배달 받는 분들이 재미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저만의 재미라도 재미는 재미니까 이 재미가 부족한 세상에 재미를 조금은 보탠 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라고 말하기 전에 비올레따 빠라의 노래 [생에 감사해]의 일부를 배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곁들여서. 앗, 이건 제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 이를테면 ‘노래배달’인가요? 뭐 그래도 할 수 없지요. 못마땅하신 분은 도량이 바다와 같은 후임자 김연수 소설가의 게시판에 항의의 의사를 마구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글로 해도 좋고 노래로 하면 더욱 좋겠지요.

생에 감사해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두 개의 샛별 같은 눈으로는
잘 구별할 수 있어 검은 것과 흰 것을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그리고 많은 사람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를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활짝 열린 두 귀를 주었어
밤낮으로 듣지 귀뚜라미 소리, 카나리아 소리,
망치 소리, 물레방아 소리, 공사장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소리와 글자를 주었지
그것으로 난 낱말을 생각하고 발음하지
어머니, 친구, 오빠 그리고 찬란한 빛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의 영혼의 길을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두 발을 주어 걸을 수 있게 했어
난 도시와 늪지대를 걸어 다녔어
해변과 사막을, 산과 들판을
그리고 그 사람의 집, 그 사람의 거리, 또한 그 사람의 정원을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심장을 주었지, 그게 뛰어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고결한 예술을 볼 때
나쁜 사람들 멀리 착한 사람을 발견할 때
그리고 그 이의 맑은 눈 깊은 곳에 내 시선이
가 닿을 때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었어
웃음도 주고 눈물도 주었어
그래, 난 기쁨과 슬픔을 분간할 줄 알아
내 노래는 기쁨과 슬픔으로 만들어졌지
그 노래는 바로 여러분의 노래
모두의 노래는 또한 나의 노래

- 비올레따 빠라 작사/작곡/노래

그럼, 안녕히.

2008년 4월 24일
문학집배원 성석제

비올레따 빠라(1917-1967) : 20세기 칠레를 대표하는 민중 가수. 젊은 시절부터 칠레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요와 시, 전설, 춤 등을 수집하고 포크음악을 결합하여 독특하고 체계적인 대중음악을 선보임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에 불어닥친 ‘누에바 깐시온’ 바람의 대모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남미 출신의 예술가 가운데 처음으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1967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기 전에 부른 곡 [생에 감사해](1966)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생을 긍정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노래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