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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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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개개비 둥지로 날아간 풍선
- 김나무
바람이 불 때면 이상하게도 분홍 풍선의 마음속에서 속삭임이 들려 왔다. ‘떠나야 해. 어서 가자, 어서!’ 그 때문이었다. 노란 원피스 입은 아이가 끈을 놓치자 풍선은 두려움 없이 바람에 몸을 실었다. 바람은 풍선을 반겼고 어디든 데려다 주었다. 구름을 머리에 이고 한가롭게 둥둥 떠가다가, 새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었다. 뿌리 내린 채 떠나지 못하는 나무들이 풍선을 우러러 손을 흔들었다.
[창비어린이 2008 가을]
|소설|
죽음에 관한 명상 ― 전설 다섯
- 강병석
“보다시피 사건은 단순합니다. 육군 이등병 권정섭은 국가에도 집안에도 골칫덩이일 뿐인 탈영병 신세다. 그가 동네 친구 다섯과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매우 불리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여름날 오후였으므로 날씨는 무덥고 숨은 가빴다. 가까운 곳에 우물이 있었다. 달려갔다.
[계간문예 2008 가을]
|소설|
치우
- 이규정
내가 ㅂ호텔 앞에 닿은 것은 약속 시각 5분 전이었다. 그런데도 임상태는 호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자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악수를 하고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가 2000년이었으니 9년 만의 해후였다.
[한국소설]
|소설|
비탈진 숲 마을은 춥다
- 한상윤
에스(S)자를 수차례 반복하는 비탈길을 산을 끼고 올라오자면 숨이 찼다. 뙤약볕 내리쬐는 성하나 허옇게 센 늙은이 같은 강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이 아니라면 그런대로 운동삼아 걷기에 별 무리가 없을 거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방에 책 몇 권이 담겨졌거나 시장에 들러 사들인 채소와 생필품 몇 가지 담긴 봉지를 들기라도 했다면 절반도 못 가서, 집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짐을 부리고 잠시 걸음을 멈춰야 한...
[월간문학]
|소설|
대 바람소리
- 문순태
81세의 오동례 할머니가 딸의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한다. 나이를 밝히는 것도,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오동례 여사라고 하자. 오동례 여사의 화장은 누가 봐도 너무 서투르다. 그녀는 팔십 평생에 화장대 앞에 앉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정신과 표현 2008 가을]
|소설|
댄싱 맘
- 조명숙
그녀와의 대화는 대부분 논쟁으로 끝이 났다. 무심히 뱉은 말 한 마디조차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그녀의 말버릇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 대목에선 ‘저녁 무렵에’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이 한정하는 범위가 좀 넓긴 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정하기 곤란할 때 적당한 말이지. 네 대답에 따라서 나도 스케줄을 새로 짜야 하거든.
[문학들 2008 가을]
|소설|
즐거운 부케
- 허혜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읽어주는 공주 이야기에서는 항상 술 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공주는 거의 언제나 숨소리가 가빴고 빠른 목소리로 걸어 다녔으며 시도 때도 없이 하품을 해대었다. 왕자에게 입맞춤을 당할 때조차도 소주 냄새를 솔솔 풍기며 딸꾹질을 하는, 그런 공주였다.
[문학수첩 2007 겨울]
|소설|
해파리
- 권리
해파리가 도시를 떠돌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여름이다. 인천 근해에 해파리 몇 마리가 출몰했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의 도시에서 해파리에 물린 사람들이 출몰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그 중에서도 몸길이가 8센티미터도 안 되는 푸른병해파리는 가장 독종이었다.
[아시아 2008]
|소설|
표준치의 오류들
- 정소현
사장은 내게 더 이상 일을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팔 개월 만에 나는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그동안 영세 쇼핑몰에서 인터넷에 판매하는 옷 사진을 찍고 설명을 첨부해 제품설명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사진을 적당히 찍을 줄 알고 컴퓨터만 다룰 수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소설 2008]
|시|
파인애플
- 박서영
과도 끝에 파인애플을 꽂고 사내가 가까이 온다 열대의 사랑을 흔들며 온다 태양이 내리쬐는 길 한가운데를 성큼성큼 온다 칼끝에서 과즙이 흐른다 벽돌처럼 움직이지 않는 내 사랑을 향해 평화와 고요의 한 가운데를 지나 나를 찌를 듯 사내가 다가온다 태양에서 하산한 사내 검붉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내미는 파인애플 살점 한 조각 내 눈엔 과도만 도드라져 보인다
[시로여는세상 200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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